<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5월의 책, 어쩌다 한국인
대한민국 사춘기 심리학

(20.05.10)

 

 

 

'어쩌다 한국인'. 이전에는 관심 갖지 않았을 책 제목이다. 한 집단을 싸잡아서 일반화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다 여자, 어쩌다 B형, 어쩌다 쥐띠, 이런 그룹화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의 장기간 외국 생활을 통해 내가 가진 필연적 특성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느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6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주체성, 가족확장성, 관계주의, 심정 중심주의, 복합 유연성, 불확실성 회피, 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이 한국인이 가진 특성 때문에 얼마나 필연적이었는지를 평가한다. 현재 한국이 '사춘기'에 빠져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조언이 담겨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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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자원이나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고스톱을 칠 때도 패가 나쁘면 광을 팔면서 쉬어야 한다. 포커를 칠 때도 손에 쥔 패가 나쁘고 가능성이 낮으면 빨리 포기해야, 다음에 좋은 패가 왔을 때 배팅할 돈이 남게 된다. 빤히 나쁜 패를 가지고도 "놀면 뭘 해,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쪽박 차게 되어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고통을 즐기지 말자. 필요 없는 고통은 무조건 피하고 봐야 한다.

 

서양은 평균보다 앞서는 소수를 찬양하지만, 우리는 평균보다 뒤쳐지는 인간을 돌아보는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외국 영화들은 보면, 슈퍼맨이나 람보 같은 영웅들이 적을 싹쓸이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만, 우리 영화들은 뒤쳐지는 낙오자를 돕고 이끌어서 모두가 함께 어깨동무를 한다.

 

학교나 회사에서 벌점리스트보다 더 길고 다양한 상점 리스트를 한번 만들어보자. 생각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할 것이다.

 

그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어떻게 할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이 원하는 것을 만들면 된다. 특히 지금의 인간이 아닌 미래의 인간이 무엇을 원할 지를 알면, 이미 반은 성공했다고 보면 된다. 인간이 원하는 걸 만들면, 안 팔고 싶어도 인간들은 그걸 사려고 난리를 칠 거다. 그렇다면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바로 인간이 어떤 경험은 원하는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걸 모른다.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년 동안 인간의 마음이나 경험, 욕구, 꿈 따위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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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한국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해석한 부분까지, 객관성을 띈 부분은 읽어볼 만하다. 조언 부분까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한국인을 일반화하는데 약간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중국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당시에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싫었다. 처음 중국에 가서 국제학교를 다닐 땐 영어를 못하다 보니 인종차별을 받았다. 영어권 문화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국인은 영어도 못하고 말수도 적고 자기네들끼리만 뭉친다 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은근한 차별도 있었지만 몇몇 선생의 대놓고 차별도 빈번했다. 실제로 우리학교 대다수 한국인들이 그런 편이었다. 영어를 잘 못하니까 의지 할 수 있는 동지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을 거다. 그들에게 한국인은 영어 발음도 좋지 않고 공부만 하고 자기주장이나 의견도 없는 오케이 맨이었다. 나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내 실력을 저평가받고 인격적으로 모독당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테레오 타입을 깨기 위해 이 악물고 노력했고 결국에 나 자신은 Typical Korean Girl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났다. 나에게는 개인적인 성취였지만, 한편 굉장히 모순적인 사고였다. 나 또한 Typical Korean Girl은 영어를 못하고 자기주장이 없고 공부만 한다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차별이 피해의식을 낳았다. 

5년 정도가 지나고 나는 또 새로운 문화권에 발 담그게 된다. 이번에는 한국인이 더 소수인 집단인데, 이전과 다른 점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동시에 그룹 지어 평가받고 있다는 거다. 한국인만 평가하기에는 매우 소수 인종이라 평균화할 만큼의 표본이 없다. 그리고 그때는 언어의 장벽의 차별의 큰 부분을 차지했기에 충분히 극복 가능한 환경이었다면, 지금은 아시아인이라는 인종 자체로 차별받는다. 어쩌면 더 불합리한 차별이 깔려있지만, 이번에 내 스탠스는 많이 다르다. 그때는 '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거야!' 하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은 '네가 뭔데 날 평가해?' 하며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 

그동안 이미 타인의 많은 평가에 상처받아 웬만한 자극에는 무뎌져서 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복어처럼 팍 하고 가시를 곤두세웠다면 지금은 통발에 물흐르듯 넘겨버린다. 그리고 이제는 특정 집단에 속해서 가지게 된 특성을 받아들이게 됐다. 같은 법과 환경 아래 살고 있는데 비슷한 사고랑 특성을 가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였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으로서 가진 장점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집단으로서 평가받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집단 속에서도 개인으로서 성격, 재주와 능력으로 차별성을 띄느냐 이다.

 

@하루 한 편 글쓰기
2020년 5월 11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