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자, 감옥

자가 격리 12일 차다. 이틀만 더 지나면 방문 밖을 나갈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혹시 모른다고 엄마는 방 안에 일주일 더 갇혀 있으라고 한다. 그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방에 갇힌 지 15일 차 되는 날에는 당당하게 방문을 열 것이다. 하루 차이로 갑자기 바이러스가 있던 몸에서 없던 몸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자가격리가 끝난 후에도 당분간 외출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활동 가능 범위가 방 안에서 집 안으로 확장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유럽에서 귀국하기 전부터 이 주간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때는 원룸형 기숙사라 방에 화장실과 냉장고와 음식이 있었고, 자유 의지로 먹고 자고 씻고 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아예 락다운까지는 아니었어서 조심해서 자전거 타고 장을 보러 가거나 쓰레기 버리고 세탁기를 돌리느라 건물 밖을 몇 번 나가곤 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좁고 화장실도 없는 방에서 서식 중이다. 당연히 (일반 가정집) 방에는 냉장고도 없다. 삼시 세 끼는 엄마가 차려주신 배식판을 빠르게 문을 열고 전달받는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다. 내가 사용한 후에는 소독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벗은 엄마 얼굴은 아직 보지 못했고 가족이랑은 거의 카톡으로 대화한다. 아니면 방문 밖으로 큰 소리를 내거나 한다. 아직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선물이 담긴 캐리어는 열지 않은 채 그대로 베란다에 빼두었다.

딱 일주일에서 열흘차 될 때가 큰 고비였다. 며칠 전에는 귀국편 비행기 가까운 좌석에 확진자가 있어서 '감염병 의심자'로 판명되어 새로운 자가격리 통지서를 받았다. 이미 자가 격리 중이라 생활적 측면에서 달라진 점은 없지만 더 찝찝해진 건 어쩔 수 없다. 지금은 해이해진 마음을 다 잡아 괜찮다. 아침밥 먹기 전 복근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운동할 때 공부할 때 잠잘 때 옷을 갈아입는다.

매일 아침과 오후 3시, 이렇게 두 번 자가 체온 측정을 해서 보건소에 보고를 한다. 아니면 전화가 온다. 한번은 핸드폰 GPS 추적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핸드폰 설정을 건드린 적도 없고 핸드폰 충전을 안 해두어 배터리가 나갔을 뿐이다. 일요일 오전 열 시쯤이었고 핸드폰이 꺼져있는지도 몰랐다. 요즘 자가격리를 어기고 거리를 활보하는 무개념 유학생 입국자 몇몇 때문에 오히려 집에서 자가격리를 지키며 고통받는 수많은 자가 격리자들에 불똥이 튄다. 의심과 감시의 정도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코로나 확산 방지와 감염자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만 더 힘들어진다.

왜 감옥에 가는 게 형벌인지 몸소 체험하고 있다. 햇볕과 바깥 공기, 신체 활동, 그리고 사람과 대면 소통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오늘날의 '감옥'은 18세기 후반 '신체형'의 징벌이 사라지고 생겼는데, 형벌이 가해지는 대상이 '신체'에서 '정신'으로 전이된 것이라 한다. 단두대 처벌 등의 신체형에 비해 구금형은 수형자를 나태하게 하고, 관리 차원에서 비용도 들고, 사회에도 무익하고,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기 식의 효과도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형태가 자리 잡게 된 건, 개인의 일상적인 행동을 감시하고 복종하고 순응하게 하는 데 있다. 비자발적 격리와 보고의 형태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른 게 없다.

'나 하나는 괜찮겠지' 는 멈추자. 주말에 외출 자제하라고 긴급 재난문자가 몇 통씩이나 오는데도 밖에 놀러 나간 거 자랑하는 글이나 사진 올리는 사람이나, 클럽 가는 사람은 무슨 생각인지 궁금하다. 집 밖을 아예 나가지 말라고 통제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 만날 거 좀 덜 만나자, 꽃 구경은 좀 미뤄두자, 는데 그게 자가 격리 대상자가 자가격리를 어기고 10분 집 앞 놀이터를 나간 것과 무슨 차이인가? 코로나 확진자와 자가 격리자 대상자가 잘못한 건 없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확진자가 되거나 동선이 겹쳐 자가 격리자가 된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가격리 경고를 받았음에도, 혹시 의심되는 증상이 있었음에도 조심하지 않고 길을 활보하고 다닌 사람이 잘못한 거다. 요즘 밖을 나가는 사람이 적다고 꽃놀이를 가고, 비행기표가 싸다고 여행 가는 게 잘못된 행동이다. 바람 좀 쐬고 싶고 갑갑해도, 자발적으로 집에 있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한가한 꽃놀이'를 당신 혼자 즐기는 거다. 

네덜란드에서도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주말에 공원이나 해변에 몰린 사람들을 보고 의식 수준이 떨어진다 생각했는데, 네덜란드 보고 뭐라 할 말이 아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