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본다는 것

아주 오랜만에 시험을 봤다. 

<Consumer Behavior (소비자 행동)> 코스의 시험이었는데, 그동안 배웠던 이론을 주어진 제품, 예상 소비자, 환경, 제품에 적용하여 주장을 펼치는 서술형의 두 시간짜리 시험이었다.

온라인 비대면으로 진행했던 수업이라 시험 또한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예정 시험 시작 시간이 되면 사이트에 시험 문제가 올라온다. 총 4개의 큰 문제가 있었고, 자신의 학번 맨 뒷자리 번호에 따라 각각 문제에 적용하여 풀게 될 제품이나 상황이 다르게 주어졌다. 나는 끝번호가 2라서 각 문제마다 끝번호가 2인 학생들을 위한 옵션을 찾아서 풀었다. 모든 학생들이 같은 문제를 부여받게 되면 정답을 공유하기가 아주 쉬워지기 때문이다. 또 혹시 모를 부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 2시간짜리 본시험이 끝나면 랜덤으로 뽑힌 몇 명만 따로 교수님과 1대 1 문제풀이 세션이 진행될 거라고 공지했다. 다행히 나는 랜덤 뽑기에 걸리지 않아서 추가적인 문제풀이 세션엔 참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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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보기를 즐기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겠지만 나 또한 시험을 매우 두려워한다. 필기 시험보다는 프로젝트나 발표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을 선호해왔다. 프로젝트나 발표는 미리, 내 기준에서 완벽하게 준비해서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가능하지만 시험은 언제나 완벽한 준비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험이 다가오면 초조해지고 해야 될 공부에 집중을 못하고 딴짓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평소에 해왔던 것보다 오히려 시험 기간에 공부를 덜 한다.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내가 가진 지식을 평가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잘 보고 싶다는 마음과 약간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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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시험 문제지를 다운 받자마자 떨려서 첫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끝까지 미리 확인하려고 했는데 심장이 쿵쾅대서 그럴 수가 없었다. 더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아서 30분당 한 문제, 한 문제씩 읽고 풀기로 했다. 그러니까 문제가 읽히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고 문제에 답을 써내려 나갔다. 처음에는 손이 벌벌 떨려서 오타가 계속 났다. 문법적으로 말이 안돼도 좋으니까 일단 떠오르는 대로 다 쓰자 하면서 끝까지 떨리는 손으로 답을 작성했다.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문제가 풀렸고, 두 시간 동안 네 문제에 워드 다섯 쪽, 1800 단어 이상의 답을 써냈다. 객관식이 아니라 맞고 틀리고가 없는 문제들이었다. 문제에 맞는 답을 했는지는 시험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거 같다. 1분 남기고 답을 다 써서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 말이 되든 안 되는 답안을 일단 제출하고 한번 읽어봤는데 다행히 전체적으로 내 의견 전달에는 이상이 없었다. 아쉽게도 딱 한 부분에서 단어 하나를 빼먹고 썼는데 의미 전달에는 이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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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동안 영혼까지 끌어모은 집중력을 발휘해서 시험을 보고 나니까 진이 빠졌다. 몸속의 모든 에너지를 써버린 느낌이랄까. 시험을 보기 전, 보는 중의 감정은 견디기 힘들지만 보고 나서의 개운함은 너무나도 짜릿하다. 모든 일에 이렇게 최선을 다하면 정말로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에도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일이나 프로젝트에 몰입하고, 끝내 놓고 완벽하게 쉬고, 하면 참 좋을 텐데. 아주 효율적인 삶이다. 하지만 외부 환경과 압력이 조성되지 않으면 혼자 하기에는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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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보기 전에는 '시험 끝나자마자 빵집에 가서 맛있는 타르트를 사먹어야지!'하고 다짐했는데 오히려 식욕이 떨어져서 그냥 침대에 뻗어있었다. 항상 시험 전에는 시험 끝나고 나서 맛있는 음식 먹을 계획을 하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거의 없다. 그날은 침대에 누워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휴식을 취할 뿐이다. 약간의 공허함과 함께 말이다. 어제도 영화를 두 편이나 보다가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잠을 잤다. 오늘 수업이나 일정이 딱히 없어서 아예 늦잠을 자버려야지 했는데 여덟 시 반도 채 안돼서 눈을 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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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마주하는데까지는 스트레스가 따르지만, 시험이 있어서 주는 긴장감과 압박감으로 한 단계 성장하게 되는 거 같다. 근육도 커지기 위해서는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듯이, 스트레스와 고통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너무 편안함과 안정감이 지속된다는 걸 느끼면 가끔씩 최대한의 몰입과 긴장을 끌어낼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던져 놓는 게 좋다.

 

@하루 한 편 글쓰기
2020년 11월 6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