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르는 비밀 커뮤니티

나에게는 나만 아는 비밀 커뮤니티가 세 개 있다.

커뮤니티 멤버는 모두 나의 지인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커뮤니티의 존재 여부나 본인의 소속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소속된 멤버들끼리의 이해 관계도 없는 편이다. 내 멋대로 만들었고 따로 이름을 붙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혼자만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나만의 비밀 커뮤니티다. 그렇다고 허구의 인물을 상상해 만든 건 아니다. 특정 플랫폼을 통해 형성되었기에 꽤나 근본이 있다. 역사도 짧지 않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함께하며 애정을 쌓아오고 있다. 삶의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 예상한다. 이제껏 베일에 감춰왔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커뮤니티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역사가 깊은 순으로 하나씩 공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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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ㅅㅈㅇㅅㅇㄹㅅ (aka ㅅㅍㅆㄷㅍㅇ)

첫번째 커뮤니티는 인스타 운동 계정 팔로워다. 친한 친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아니다. 절친인 경우도 있고 춤 동아리 친구도 있는데 그것도 거의 만나지도 않는 사람도 있고 친한 순서도 아니다. 기준이 되게 애매한데, 이 사람에게는 이 정도 공개해도 되겠다, 하는 요상한 기준이 있다. 그냥 내 마음대로다. 그렇다고 팔로워를 무작정 받지도 않는다. 더이상 키울 마음은 없으며 그동안 크게 두 번 정도 정리를 하기도 했다. 예외는 있어서 아주 몇 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ㅅㅈㅇㅅㅇㄹㅅ는 인스타 운동 부계정이다. 2017년 늦여름, 휴학을 하면서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선언하며 계정을 만들었다. 벌써 5년차다. 2021년 2월 3일 기준, 본계정에는 포스팅이 36개뿐이지만 이 계정에는 427개나 있다. 그만큼 오랜 시간 쌓아왔고 가장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첫 시작은 세세한 운동기록이었다. 17년도부터 했던 운동들 - 홈트레이닝, 달리기, 비보잉, 주짓수, 요가 등 -의 발전 과정이 담겨있다. 특히나 비보잉은 지금 눈뜨고 다시 볼 수 없는 첫 시작 영상부터 기록되어있다. 가끔씩 인바디 결과랑 몸무게도 올렸기에 당시 몸 상태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는 외식을 자주 하느라 맛있는 음식 사진만 올리기도 했다. 주짓수를 할 때는 마치 운동선수처럼 새로 배운 동작 하나하나를 복기해두었다. 어디에 힘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까지도. 코로나 이후로는 아쉽게 운동을 적극적으로 배우지 못해 운동 관련 포스팅이 많지 않다. 혼자 했던 팔 굽혀 펴기 챌린지나 어려운 요가 동작 자세 연습기를 올리곤 했다. 

 

가장 오래된 만큼 가장 애착이 많이 가고 좋아한다. 고작 운동 기록한 부계정에 왜 그토록 애정이 가냐고 묻느냐면, 절대로 외부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비밀 이야기와 영상과 사진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근본은 운동 계정인데 실상은 나의 성장기라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개인적인 이야기와 힘들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털어놓았다. 평소에 힘든 일은 절대 주위에 털어놓지 않고 혼자 해결한다. 그래서 인스타 부계정이 나의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그렇게 글로써 털어놓고 나면 읽고 싶은 사람만 읽으면 되니까 죄책감도 덜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응원해줬다. 그 응원의 말들로 힘든 일을 견뎌내왔다. 

 

팔로워 수도 약 사십명 뿐이라 좋아요를 누르는 걸 보고 이사람은 읽고 있구나, 하고 짐작하고 있다. 반정도는 보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그렇게 운동 계정이라 써놓고 주제에 어긋나는 이야기나 올려놓으니 보기 싫은 사람은 제발 언팔 좀 해주세요, 라는 글도 수차례 올렸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먼저 언팔을 하지 않는다. 그냥 글을 아예 안보는 거 일 수도.

 

여튼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 소중한 계정이자 커뮤니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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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ㅇㅊ

두 번째 커뮤니티는 영화 별점 기록 서비스 유저들이다. 커뮤니티의 범위가 가장 모호하고 이상하다. 영화를 좋아하며, 내가 팔로잉을 하고, 상대방도 팔로잉을 하면서, 취향도 엇비슷하고, 이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친구여야 한다. 커뮤니티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뭐하게 2.5명이다. 원래는 두 명이었는데 최근에 한 명이 범주에 들어오고 있다. (최근 한 명을 밝히자면 내 친동생이다) 그리고 이들은 전혀 이해관계가 없다. 첫 번째 커뮤니티에서는 뮤추얼 프렌드가 많았다면, 이 커뮤니티 친구들은 서로 알 길이 없다.

 

ㅇㅊ 서비스를 런칭한 이후로, (16년인가 17년도부터) 꾸준히 영화 별점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를 보자마자 바로 기록을 한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기도 하고 하나씩 쌓아가는 재미와 맛이 있다. 친구들이 별점을 메기면 친구 소식이 뜬다. 이 친구는 무슨 영화를 봤구나, 이 친구는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소식을 업데이트한다. 취향을 알아가면서 내적 친밀감을 쌓아오고 있다. 자주 만나지도 않고 몇 년째 온라인으로만, 가끔 소통한 친구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 가까운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얼마 전 <남매의 여름밤>을 봤다. 비교적 최근 한국 영화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에 인스타 스토리로 공유를 했다. 그랬더니 아주 무시무시하게도 딱 ㅇㅊ 커뮤니티 친구들로부터 저 영화 봐야겠다는 답장이 왔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들도 나를 먼 거리의 영화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여튼 가장 작지만 뿌듯하고 공통의 관심사로 이뤄진 그런 커뮤니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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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ㅌㅅㅌㄹ

세 번째 커뮤니티는 글쓰기 친구들이다. ㅌㅅㅌㄹ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가 아직 일 년이 되지 않았으니 가장 최근에 형성되었다. 아마 이글을 읽을 확률이 가장 높기도 하다. 이들도 거의 서로를 모른다.

 

처음에는 둘이었다. 맨 처음 혼자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커뮤니티라 부르긴 어려우니까, 두 번째 친구가 시작하고난부터 곧바로 커뮤티니가 형성됐다고 보면 된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다. 아픔도 보인다. 그래서 더 빠른 속도로 내적 친밀감이 쌓인다. 괜찮은 주제로 쓰인 글을 보면 배울 점도 많고 재미있다. 한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는 친구 소식이 궁금하여 글 좀 써달라고 연락을 한적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그룹은 자기 자랑 글만 올리지 않아서 좋다. 아직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의 두 커뮤니티처럼 몇 년이고 지속되었으면 한다.

 

여튼 앞으로도 계속 함께 했으면 하는 그런 커뮤니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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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은 모르겠지만, 나 혼자서 소속감을 느끼며 여러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이었다. 절대로 각 커뮤니티를 실제 커뮤니티화 할 마음은 꿈에도 없다. 내가 느끼기에 가장 대단한 사람들은 자기 생일에 서로 모르는 본인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여는 핵인싸들. 인싸보다는 아싸, 아니 그사이의 그럴싸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써, 커뮤니티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공개를 했더라도 부담 가지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스토킹을 하거나 해칠 생각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