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방

크리스마스 방학 첫 주내내 밤낮이 바뀌어 가며 놀았다. 식사 초대를 받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한국에 있는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거나, 이 모든 것에 지쳐 침대에 누워있거나. 하여튼 방 정리할 만한 마땅한 시간과 체력과 의지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2021년 새해 첫날 또한 꼴이 말이 아닌 방과 함께 맞이했다. 1월 1일 또한 점심 초대, 장보기, 친구와의 영상통화, 그리고 저녁 초대와 새벽까지의 수다로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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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다음 날인 2일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서 드디어 청소를 결심했다. 책상 위의 먹다 남은 커피 컵과 접시를 한 번에 들려고 양손과 겨드랑이 사이까지 끼웠다. 욕심내서 바닥에 둔 또 다른 컵 하나를 주우려다가, 아차, 겨드랑이 사이에 껴둔 컵이 기울어 바닥에 커피가 쏟아졌다. 책상도 복잡하고 바닥도 더러운데 커피까지 쏟았으니, 이참에 그냥 대청소를 해버리자!

아니, 방구조를 바꿔버리자!

무슨 의식의 흐름인지, 사서 고생과 후회를 남길 찰나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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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과 옷장과 책장과 냉장고와 전자레인지와 스툴과 미니 소파를 옮겼다. 몸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는 편은 아니라, 옷장을 옮길 때는 내 몸이 뒤로 밀려나기도 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장녀로서(?) 갈고닦아온 힘(?)과 스킬로, 안에 내용물을 빼지 않고도 가구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신발장 빼고 방안의 모든 가구의 위치를 바꿨다. 스툴은 용도가 바뀌기도 했다. 냉장고랑 전자레인지랑 책장은 각각 약 다섯 번 정도, 마음에 들 때까지 이리 밀었다 저리 밀었다 했다.

바닥엔 잡동사니가 쌓여있고 먼지가 굴러다닌다. 암울해.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이게 뭔 고생이람, 후회의 연속이다. 그래도 하고 나면 뿌듯할 거야, 하며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하자. 이불 빨래도 하고 창문도 닦고 가구 뒤에 쌓였던 먼지도 다 쓸고 닦아 냈다. 그리고 물건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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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성된 방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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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방, @suziosau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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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사진을 찾을 수 없어 비교가 안되지만, 하여튼 모든 걸 갈아엎었다. 다 마무리하고, 방전되어 침대에 쓰러져 누워서 가족 채팅방에 자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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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 '오 뭐야'

나 - '아침에 갑자기 삘 받아서 다 갈아엎음 ㅋㅋㅋ 이사한 거 같이 기분 좋아 상쾌해 ㅋㅋ'

동생 - '좋아 보인다 사무실 같아'

나 - '맞아 사장님 방처럼 만들었어'

엄마 - '사장님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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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이번 가구 배치의 핵심은 책상이다.

이른바 - 사장님 책상.

유튜브에 풍수지리를 참고해서 가장 최적의 위치를 선정했다. 방문을 등지지 않게, 그리고 내가 태어난 년도와 더 잘 맞는 방향을 향하게 했다. 평소에 거슬렸던 햇볕도 고려했다. 자리에 앉았을 때 직사광선을 피하도록 창문으로부터 일정 거리도 띄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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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직 이틀째이지만, 집안 구조와 책상 배치를 바꾸고 나니 집중이 훨씬 잘된다. 같은 방에 가구 구조만 달라졌을 뿐인데 기운이 달라졌다. 책상에 앉으면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일하는 듯한 기분이다. 안타깝게도 저번 주부터 집에 있던 캡슐 커피 머신이 고장 나서 커피는 못 내려 마시는 중이다. (PCB 판에 문제가 있는 듯한데 집에 스크루가 없어서 분해를 못한다. 빨리 고쳐야 되는데.) 하여튼 공간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고 있는 중. 사장님 책상에 앉았으니 사장님 될 일만 남았다. 2021년에는 사장님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