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머리 자르기

벌써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미용실에 마지막으로 발을 들인 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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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앞머리나 한번 잘라볼까, 하고 커트용 가위를 꺼냈다. 앞머리는 몇 가닥 되지 않기에 후딱 잘라버리는 게 싶겠지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지 같이 갓 벽한 얼굴을 가졌다면 어떤 머리스타일도 어울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수지가 아니다. 내가 가진 얼굴형에 어울리게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앞머리는 특히나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심해서 잘라야 한다. 아, 아쉬운데 조금만 더 짧게! 하다가 영구 머리가 되기 십상이다. 적당히 되었다 싶을 때 만족하고 멈췄어야 하는데.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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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대실패로 끝나던 눈썹까지 오는 짧은 앞머리 만들기를, 오늘은 낮은 확률을 뚫고 성공해버렸다. 탄력 받아서 뒷머리도 자르기로 한다. 뒷머리를 자르려면 준비물이 몇 개 더 필요하다. 큰 거울과 작은 거울, 큰 종이봉투, 숱가위, 그리고 머리끈 두세 개 정도. 작은 거울은 뒷머리 길이를 볼 때 사용한다. 큰 종이봉투를 앞에 두고 자르면 나중에 잘린 머리카락을 치울 때 매우 편하다. 숱가위는 숱을 치는 것과 동시에 약간은 삐뚤빼툴한 라인을 감춰준다. 머리끈은 머리카락의 구역을 나눌 때 사용한다. 특히 손도 닿지 않고 거울로도 보이지 않은 뒷머리 라인을 맞추는데 용이하다. 자르고 싶은 길이에 맞춰 머리끈을 묶은 후 그대로 앞으로 가져와서 자르면 꽤나 괜찮은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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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가위와 커트가위, @suziosaurus

 

 

 

종이 봉투 속 잘려나간 머리카락, @suziosau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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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머리는 중학생 때부터 종종 혼자 자르곤 했다. 본격적으로 뒷머리까지 셀프 커트를 하기 시작한 건 유학 생활을 하고 난 후부터다. 유럽 미용실은 비싸면서도, 미용사들이 동양인 모발에 익숙지 않아 결과물도 그리 좋지 않다는 소문을 주워 들었다. 그래서 유학 오는 짐을 쌀 때 집에 있던 미용가위를 하나 챙겼다. 가위까지 챙겨서 왔건만, 막상 머리 자를 때가 되자 직접 자를 용기가 없었다. 집 주위 미용실을 알아봤다. 가격표를 보고는 종이봉투와 가위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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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그런데 한번 잘라보니까 꽤나 할만한걸? 심지어 재미있다. 그렇게 나는 그 후로도 몇 차례 혼자 미용실 놀이를 하게 된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도 머리가 꽤나 길었었는데, 셀프 커트에 맛들려 미용실에 가지 않고 혼자 해결했다. 또 집 앞에 미용도구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궁금해서 엄마랑 가게에 들렸다가, 숱가위와 함께 예정에 없던 염색약까지 구매했다. 엄마가 집에서 염색을 해주셨다. 결과는 아주 만족! 고객님도 만족, 그리고 여름에 만났던 고객님의 친구들도 색 예쁘다고 여러 번 칭찬을 해줬다.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오기 며칠 전, 남은 염색약으로 엄마가 뿌염까지 해주셨다. 결과는 또 대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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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돌아올 때는 새로 산 숱가위까지 챙겨 왔다. 그렇게 나는 19년도 여름 이후로 미용실에 가지 않고도 두 번의 염색과 여섯 번의 셀프 커트를 성공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머리 자르기 스킬도 획득하고 재미도 있는 데다가 돈까지 아낄 수 있다. 무려 일석삼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