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A1/A2 공부 및 수료

드-디-어! 

파이널 시험 결과와 함께, 네 달반에 걸친 인생 첫 이탈리아어 수업이 막을 내렸다.

---

영광스러운 수료증, @suziosaurus

---

큰 점수는 바라지도 않았다. '패스만 하자!'가 목표였다.

결과는 넉넉한 점수로 통과!

걱정했던 듣기와 말하기 파트에서는 오히려 선방했다. 듣기는 무려 만점을 받았다. 쉽게 느껴졌던 독해 파트에서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실수를 했다. 조금만 더 집중했어도 충분히 다 맞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한 때 과락을 걱정하며 쩔쩔매다 벼락치기로 여기까지 왔다는데 만족한다.

.

.

"What do you think about your performance today?"

말하기 시험을 마치고, 선생님이 내게 결과가 어떨거 같냐고 물었다. (이때는 아직 독해와 듣기 파트 채점 전이었다.)

"Well, I think.... I did quite okay, okay-ish."

"You did amazing!"

그러자 선생님이, 아주 잘했다고 했다. 너의 노력이 결과로 나타났다고 했다. 물론, 아직 많이 버벅거리고, 작은 문법 실수도 하고, 사용하는 단어 범위도 한정되어있다. 하지만 다른 유럽 언어권 학생들에 비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어려웠을 텐데, 이렇게 끝까지 해낼 줄 몰랐다고 하셨다. 

아마 나와 같이 이탈리아어 공부가 버거웠던 학생이 몇 있었을 거다. 실제로 첫 수업에 비해 수강생 수가 줄기도 했다. 수업 과정 중반부로 들어가면서 나 또한 수강 포기를 고민하기도 했다. 한편, 어느 순간, 남아있는 다른 무리의 학생들의 말하기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됨을 느꼈다. 전반적인 학생 실력이 향상되니, 수업 중 선생님의 이탈리어 사용 비중이 늘었다. 그에 비해 제자리걸음인 나는 더더욱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심각성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선생님께 SOS 메일을 보냈다.

'수업을 알아 들을 수가 없다. 시험이 너무나 걱정된다. 듣기 실력을 향상 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자 선생님이 친절하게 답변해주셨다.

---

선생님의 답장 중 일부, @suziosaurus

---

그렇다. Listening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알고있는 어휘량이 부족해서다. 아는 단어가 없는데 어떻게 알아들을까. 수업 초반에 단어 공부 중요성을 흘겨 넘겼더니, 역시나 예상된 결과였다. 그렇게 밑 빠진 독의 보수 공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1. 단어 외우기 + 문법 달달 볶기

수업 교재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재다. 다시 첫 챕터 단어부터 외우기 시작했다. 이미 배웠는데 모르는 단어가 많았다. 이게 문제였구나! 내가 초반에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제대로 공부를 안했구나. 단어를 다시 외우면서 문법도 다시 점검했다. 전권 문법을 세 번 정도 훑었다.

---

2. 팟캐스트 듣기

radiolingua.com/coffeebreakitalian/

Coffee Break Italian - Coffee Break Languages

이탈리아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들었던 팟캐스트다. 당시에는 워낙 단어도, 문법도 기초가 부족해서 어렵게만 느껴졌다. 교재로 문법과 단어를 빡세게 공부하고 다시 같은 에피소드를 들었더니, 웬걸, 이제야 들리기 시작한다. 책에 나왔던 문법과 단어들이 반복되어 나온다. 12월 초반에 쉴 때마다, 거의 매일 아침 점심으로 팟캐스트를 들었다. 문법 공부와 팟캐스트를 동시에 하니, 확실히 상호 도움이 됐다.

---

3. 그리고 영상들

딱히 공부를 위해 찾아본 건 아니다. 실력을 올려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관련 영상이 보이고, 끌렸다.

www.youtube.com/watch?v=IPcAz1Xoybg&t=791s

 

마침 그러던 중에 밀라논나 영상이 올라왔다. 

'헐, 뭐야! 이탈리아어가 들리잖아!!!'

.

.

그리고 어느 일요일 오후, 명작으로 불리는 영화 시네마 천국을 봤다.

---

시네마 천국 포스터

---

'헐 뭐야, 이것도 좀 알아듣겠잖아!'

.

.

그리고 그다음주 일요일에는 로마의 휴일을 봤다. 

---

---

이건 이탈리아어로 된 영화는 아니었지만, 간간이 이탈리아어가 나왔다.

예를 들면 택시 기사랑 대화라던가.

물론 영화를 한번 본다고 언어 공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거 자체로 문화 공부가 되고 흥미를 돋운다.

---

'나 이탈리아어 할 줄 알아요!'

라고 하기엔 부족한 실력이지만, 그래도 이제야 기본은 알아듣는 수준에 도달했다.

새로운 언어를 제대로 배워본지가 오랜만이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잠시 잊었었다. 처음 중국어를 배웠을 때를 되돌아보면, 단어와 문장을 달달 외우고, 쓰고, 말하고, 듣고, 테스트하고, 의 반복이었다. 제대로 된 공부와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인풋이 필요하다. 이제 다시 감을 잡았다.

다음 학기는 졸업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Advanced Italian 과정과 병행하기에는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 그래도 기왕 배우기 시작한 이탈리아어, 혼자라도 계속 공부해보려고 한다. 시험을 본 날 저녁, 바로 다음 과정 교재를 주문했다. 본 교재 스타일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맨날 공부, 책 혹은 뭔가 배우는데 돈을 아낌없이 퍽퍽 쓴다.

---

교재 주문... 완료!, @suziosaurus

---

한번 주문 완료한 책, 돌이킬 수 없다.

도대체 왜 네덜란드에 와서 이리 열심히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어 할 줄 알아요!' 하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날까지, 한번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