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

1월의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작가님이 10여 년 전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담아낸 에세이다. 무엇을 굳이 담아내려고,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 가볍다. 그럼에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칠리아를, 활자를 따라 함께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마치 이미 시칠리아에 며칠밤 머무른 듯했다. 코로나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에 잊고 있던 여행에 대한 열망이 다시 들끓었다. 여행 에세이란 단지 여행의 경험만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읽는 사람을 여행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한편, 젊은 시절의 작가님의 생각을 종종 엿볼 수 있었는데, 성향이나 사고가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작가님과 같은 멋있는 어른이자 예술가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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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만둬. 너무 힘들어 보여. 그리고 아직 젊을 때, 좀 더 소설에 집중해. (...)
잃는 게 더 많을 거야. 내가 당신을 알아. 당신은 눈앞에 있는 모두를 만족시켜야 되는 사람이야.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야? (...)

- 아내분이 김영하 작가님에게 교수직을 그만두라며.

• 예술가가 좋은 작품을 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 작가님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며, 그가 작품 활동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동반자가 있음이 부러웠다.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친구나 선생들은 본래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여러분의 재능을 시기하고 있다. 그건 이 세계에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 텍스트에서는 예술분야를 특정 지어 말했지만 (한국예술 종합학교), 이는 모든 분야에서 적용된다. 무엇이든 잘하면, 그 분야에서든 혹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지인이 재능을 시기하기 마련이다. 지인의 시기와 질투에서 벗어나려면 아예 특출 나게 잘해버리거나, 아니면 시기를 인정하고 즐길 수밖에. '내가 너무 잘나서 문제야!'

 

좋은 연설에 다음 세 가지가 필수적이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든가 웃기든가, 아니면 유용한 정보를 줘라.

• 감동시키든가 웃기든가 유용한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십 대의 나는, 자연이 만든 것보다 인간이 만든 것에 더 끌린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다녔다. 나는 인간이 그린 그림과 인간이 지은 책과 음악, 건축물을 사랑했다. 자연?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요. 한 선배 시인이 나를 향해 이렇게 일갈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봐, 그런 말, 너무 부도덕하잖아." 무슨 소린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인가? 그런데도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뇌리에 남았다. 

• 이십 대의 작가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나는 자연보다는 인간이 만든 것이 좋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보다는 보고 느끼고 즐길거리가 많은 도시가 좋다. 자연의 위대함을 모르는 나는 아직 부도덕한가 보다.

 

중세의 기독교도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즐거움에 인색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리스인들은 이야기가 주는 기쁨과 감동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야기 자체는 무형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움직인다. 자발적으로 힘과 돈을 쓰게 만든다.

• 겉표지가 어떠하든 탄탄한 스토리는 그만의 향기를 풀풀 풍기고, 흘린다. 그리고 결국엔 가치가 발굴된다. 

 

노토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묻는다.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들이 삼백 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하라의 열품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워야 한단 말인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은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선택하고 살아가는 게 가장 잘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한다.

 

정말 젊은 사람들은 젊은이의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라 젊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젊게 생각한다는 것은 늙은이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로든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 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 확고한 취향이 있다는 건, 어른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다. 자신만의 취향이 있으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멋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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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라는 나라가 궁금했다. 특히 이탈리아는 가보고 싶은 도시가 많아 이번 겨울 2주 크리스마스 방학 동안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코로나로 나의 완벽했던 1년 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어쩌다 보니 반대로 계획에 없던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고 있다. 수업 강도 때문에 반강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된다면, 최소한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거나 길 찾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하다. 조금 더 준비되어 찾아오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할 따름이다. 

더 잘 알려진 도시들에 가려 이전에는 잘 몰랐던 시칠리아도, 다음 이탈리아 여행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추가되었다. 이러다가는 2주 여행도 너무 짧겠는걸. 너무 앞서간 걱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