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장강명

1월의 책, 표백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잘 쓰여진 소설이란 매력적인 플롯과 캐릭터를 필두로 하여 그 작가만이 가진 스토리텔링 능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그 소설에 걸맞는 문체는 조미료처럼 이야기를 맛깔나게 하며 플롯을 돋보이게 한다. 같은 스토리를 풀어내더라도 화자가 누구인지, 독자가 특정 정보를 어느 시점에야 알게 되는지, 도 소설의 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표백>은 아주 잘 쓰여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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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은 2011년 제16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자 장강명 작가님의 등단작이다. 젊고 아름다운 나이인 20대의 청년들이 연쇄 자살로 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던진다. 본 작품은 장강명 작가님이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집필한 책이다. 기자 출신이어서인지 문체가 간결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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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한국 소설가가 김영하 작가님 딱 한 분이었다. 사람으로서 보다 소설가로서의 김영하를 먼저 좋아하게 됐다. <표백>을 읽고는 장강명 작가님이 최애 소설가 Top 2에 올랐다. 우연히도 두 분 다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학창 시절 문학과는 거리가 먼 공부를 했다. 한분은 경영학도 한분은 공학도다. 이쯤 되면 연세대에 무슨 특별한 게 있다던가,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뭘 해도 잘한다던가, 재능은 조금 늦게 꽃 피울 수도 있다던가, 아니면 그냥 내가 연세대 출신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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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정복은 결코 완성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뤄지는 순간 그 과제는 곧 거대한 공허로 변해버릴 테니까. 그 목표는 언제나 두어 발 앞에서 빛나고 있어야 했다. 아마 최선은 복수와 세계 정복을 눈앞에 두고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운명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리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경지에 오른 무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죽을 땅을 찾았다'거나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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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3%)

 

취업난이니 뭐니 해도 젊음은 좋은 것이다. 돈을 내는 친구가 있는 젊음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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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4%)

 

열두 사도가 그 시대의 최고 엘리트라서 예수의 부름을 받았던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가 제자들을 필요로 할 때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근처에 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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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7%)

 

표백 세대가 완성된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은 순응, 타협,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의 네 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순응은 완성된 사회의 시스템과 경쟁 체제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 판검사나 의사가 되거나 좋은 기업에 취직해 '치열하게' 살다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목표다. 존경받는 기업인이나 법조인, 정치인들은 거의 다 이 분류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고시 폐인', 범죄자와 사기꾼, '악바리' 혹은 '또순이'라는 칭찬을 듣는 저소득층도 이 유형에 속한다.

타협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으면서도 대체로 그에 따라가는 삶의 형태다. 이런 삶의 유형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으며 그런 의심을 억누른다. 여가 시간에 봉사 활동을 하거나, 권력에 대한 의지 없이 선의로 정당 활동에 참여하거나 기부금을 내는 행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런 활동이 근본적으로 삶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앞에 오는 것이 아니며, 그런 활동들에 대한 욕구도 따지고 보면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삶의 형태는 완성된 사회에 대단한 위협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권장되기까지 한다.

소극적 저항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나 적어도 그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닌 삶의 형태다. 예술가, 종교인, 전업 NGO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직업인, "패배자라고 불려도 좋으니 아등바등 살지 않고 속 편하게 생활하고 싶다"라며 교직원이나 하급 공무원, 카페 사장 따위를 꿈꾸는 부류도 이에 속한다. 이들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따르는 일을 경멸하지만, 자신들이 완성된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중략)

적극적 저항은 사회에 대한 폭력적인 타도를 시도하는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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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3%)

• 간추려 일부만 기록해두기에는 버릴 문장이 없었다. 거의 한 페이지 채로 옮겨오다시피 할 정도로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도 정치를 이용한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 때만, 아니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를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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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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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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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스트셀러에 올라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소설가 K의 작품이 궁금해 몇 챕터 읽다가는, 도대체, 이게, 왜, 하는 끊임없는 의문과 함께 역시 책도 유명세 빨이구나 하며 실망을 하던 중에 찝찝했던 마음을 씻어 내리며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소설은 취향을 많이 타지만 나와 취향이 엇비슷하다면 충분히 만족하며 읽을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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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20대가 스스로 자신의 과업을 찾아주길 바란다. 내게 20대는 여러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과업을 찾는 일이 바로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길이다.
이 책에서도 인용한 새뮤얼 헌팅턴의 말처럼, 사람은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20대를 정의하는 각종 담론이 대체로 공허한 이유는 그 청년 세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과업을 찾는 것이 바로 지금의 20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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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게 두 가지 있다. '계속 쓰다 보면 끝까지 쓸 수 있다'는 것과 '계속 쓰면 점점 나아진다'는 것이다. 3분의 2 지점을 통과하면 그다음부터는 저절로 끝까지 가게 된다는 점도 글쓰기와 마라톤의 공통점이다."

20대이기도 하고 글을 잘쓰고 싶어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작가의 말이 깊게 와닿았다. 스스로 자신의 과업을 찾아달라는 말, 그리고 계속 쓰면 점점 나아진다는 말. 둘다 겪어보고 무사히 넘겨낸 작가님의 메세지는 응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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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장강명

별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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