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된 완벽주의자의 이야기 - 1부

나는 효율을 중시하는 모순된 완벽주의자다.

학부생 시절에는 기숙사에서 강의실까지 걸어가는 이동 시간이 아까워서 수업 시작 5분 전이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캠퍼스 내에 거주했기에 등하교라고 부르기에 사치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사는 특권을 누렸으면서도, 5분, 10분 더 걷는 시간이 그렇게나 아까웠다. 동선을 최적화하고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전거가 필수였는데, 친한 친구들은 멀리서 봐도 자전거 타는 속도랑 모양새로 넌 줄 안다고 할 정도로 캠퍼스 내에서는 꽤나 아이코닉했다. 목표 건물에 도착하면 10초 만에 자전거를 대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늦어서 전력질주를 해야 할 때면 헉헉대며 아 조금만 일찍 나올걸 하고 후회하면서도, 항상 아슬아슬하게 정시에 맞춰 강의실에 도착하는 성취감을 즐겼다.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더라도, 수업 시간만큼은 1분이라도 늦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은 교수님과의 약속이고, 약속을 어기는 건 예의 없는 일이니까. 

한편 집을 나서기 전의 시간을 그리 효율적으로 쓰진 않았는데, 나갈 채비를 마쳤음에도 굳이 남는 시간을 침대에 누워있다던가 핸드폰을 본다던가 하며 수업 시작 5분 전까지 채우고 나서야 집을 나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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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동을 꽤나 좋아한다. 땀을 뻘뻘 흘릴 수 있는 스포츠를 특히나 더 좋아하는데, 외부 운동을 못하고 있는 요즘도 방에서 매일 최소 한 시간씩은 빡시게 운동하고 있다. 이렇게 격렬한 에너지 소비를 즐기는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운동 시간 외에는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기를 극도로 꺼려한다. 동선의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면 조금 미뤄뒀다가 여러 일을 한 번의 외출에 해결할 계획을 세운다. 가장 나가기 좋은 요일, 시간대, 교통수단,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미리 계산하고, 동선 시뮬레이션을 마친 후에야 집을 나선다. 그래서인지 중간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세워둔 일정이 꼬여 무너진다면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장 이번 주만 봐도,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일주일치 장을 보러 나갔던 이후로 아직 집 밖을 한 발짝 나가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네덜란드라는 환경에 맞춘 나에게 최적화된 루틴은,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전 중 비가 오지 않거나 적게 오는 날에 일주일 치 장을 보는 거다. 요즘에는 수업이 다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일주일에 하루만 밖을 나가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 아주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기 적합한 인간 유형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조금 심각해 보이지만 창문을 자주 열어놓고 바깥바람도 쐬고 청소도 잘하고 있어서 건강적인 문제는 없을 거 같다.)

한편 일주일치 해먹을 계획을 세워놓고 장을 보러 가 놓고선 한 번도 구매 리스트 대로만 사온 적이 없다. 중간에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 경로를 트는 게 빈번하거든. 일인 가구가 이렇게 계획에 어긋나게 장을 보면 항상 재료가 남고 결국엔 버려야 하는 음식물이 생긴다. 돈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해 먹고사는데, 이러면 차라리 밖에서 사 먹는 게 더 싸게 치겠다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뭐, 효율을 중시하는 모순된 완벽주의자는 이런 식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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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