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나왔는데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소개를 할 때, 혹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내 소개를 해야 할 때 나는 이름, 나이, 공부하고 있는 전공 정도를 말한다. 학교는 부끄러워서 숨긴다.

외국에서 혹은 외국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는 한국인이다, 그리고 영어, 중국어, 한국어를 할 수 있다, 라는 정보를 추가해서 말한다. 운동을 좋아해서 요즘 하는 운동이랑, 다룰 수 있는 악기, 그리고 영화 보는 거랑 책 읽기도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중국인 친구들은 중국어로 몇 마디를 하면 엄청 좋아해 주면서 급속도로 관심을 가지며 호의적으로 다가와 준다. 서양 친구들은 한국이나 아시아 문화와 관련된 토픽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 오늘 있었던 일, 날씨 같이 아주 사소한 토픽으로 갈아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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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상대방이 한국인이냐 아니냐에 따라 내 답변이 달라질까?

상대방이 한국인이면 내 소개가 더 조심스러워진다. 정확한 소개가 꼭 필요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이상, 애매한 관계에서 굳이 자세한 소개를 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시 마주칠 일이 없는 택시 기사님이나, 해외여행 중에 만난 지나가던 한국인 분에게는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대학교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카이스트에서 택시를 타고 나가면 거의 대부분의 기사님들이 '카이스트 학생이에요?' 물어보는데 '하핫,, ㅎㅎ 네' 하면 '아이고, 어떻게 그렇게 똑똑해요? 우리의 밝은 미래네~' 하고 미래를 책임져 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받고 훈훈하게 대화가 마무리된다.

그런데 반대로 동생 친구의 엄마가 내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분의 먼, 또 다른 카이스트 지인이 소환되어 그 친구가 공부를 잘한다고 비교 대상이 되며 내가 '깎아내림' 당한다.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제는 그냥 '지방에서 공대 다녀요' 한다. 그러면 별 다른 말이 없다.

친척도 다를 게 없다. 우리 집안 형편이 유학을 사비로 보낼 정도로까지 넉넉하지 않은데 이번에 유학을 가게 됐다. 그래서 명절 때 할머니 댁에 갔다가, 고모한테 내가 운 좋게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생활비도 지원받고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했더니, 고모의 친구의 아들도 장학금 받고 영국 유학을 갔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걔도 공부 잘하는데 너보다 한 살 많다고. 걔는 음악도 잘한다고 했다.

학교 다니면서도 여러 번 장학금을 받았었는데,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중 몇몇도 내 장학금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1초 정도 눈빛이 바뀌었다 돌아왔다. 그 후로 그 친구들에게는 '내 좋은 소식'을 꺼내지 않는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여러 번 경험했다. 남들은 내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하지 않는다.

내가 잘난 것도 없고 잘났다고 한 적도 없고 그냥 물어보길래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돌아오는 건 비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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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비교와 시샘을 받고 싶지 않아서, 뭔가 비교될 것 같은 내 얘기를 잘하지 않는다. 보통 나와 비슷한 사람이 주위에 있거나 분야가 비슷하거나 하는 경우에 비교당하기 딱 좋다. 오히려 아예 분야가 관련이 없거나 아예 나이 차이가 나거나 아예 월등히 잘해버리거나 하면 괜찮다.

한국의 지나친 '관계성' 찾기 문화 때문에 '사실'을 말할수록 뒷말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점점, 있는 그대로를 자신 있게 말하는 게 익숙지 않다. 그냥 짧게 간단히 말하는데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공개적인 곳에 이런 있는 그대로의 글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반 익명성 때문에 가능하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 적당선은 어디일까.

 

@하루 한 편 글쓰기
2020년 8월 9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