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동아리에서의 시작

www.youtube.com/watch?v=Iyu5Gl58rFM

 

유튜브 알고리즘에 갑자기 등장한 4년 전 공연 영상. 띠용!

동아리에 들어가서 한 첫 무대다. 춤을 배운 지 세 달 만에 한 공연이라 내 춤 실력은 매우 미흡하지만, 당시 팀장이었던 H의 안무 기획 하드 캐리로 실력이 묻혔다. 다행쓰!

그리고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바로 춤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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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과가 죽어난다는 사망년에 춤 동아리에 들어갔다. 우리 학교 춤 동아리가 힘들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3학년에 춤 동아리에 들어간다는 건 성적을 포기한다거나 잠을 포기한다거나 아니면 둘 다 포기한다거나 하는 거였다.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대부분 '미쳤다'라는 반응이었다. 이미 하고 있는 일도 많았다. 나 또한 내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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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가기 전 혼자 꽤 오랜 기간 고민했다. 춤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고, 당시에 프락터까지 하던 중이라 신입생 친구들과 같은 기수가 되는 것도 부끄럽기도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룸메이자 춤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었던 J에게 살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화창한 여름방학, 학교 앞 뚜바비앙이라는 브런치 집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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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자기가 더 신나 하면서, 동아리 너무 좋다고, 너 정말 재밌게 잘할 거 같다고, 꼭 들어오라고 했다. 회장한테도 말해두겠다고. (비리였나?) 마침 다음 학기 장르별 팀장 중에 아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했다. 정 고민이 되면 그들에게도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무려 당시 비보이, 락킹, 하우스, 왁킹, 어반, 걸스, 힙합 장르 팀장이 내가 이미 아는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당시 내 친구들이 열정적인 학교 생활을 하던 중이었거나 내가 핵인싸 거나 둘 중 하나인 거 같다. 그렇게 나는 내 친구이자 팀장들에게 한 명씩 동아리에 관심 있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그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나를 섭외했다. 꼭 들어오라고, 바쁜 거 이해해준다고, 못해도 괜찮다고, 정말 재미있을 거라고. 하나 같이 같은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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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루나틱이라는 춤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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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학기에는 정말로 바빠서 개인 연습을 거의 못했다. 필수 연습만 나가도 일주일에 최소 8시간이다. 만약 내가 1학년이었다면 동아리 활동을 훨씬 열심히 했겠지만, 당시에는 아무리 시간을 짜내도 그럴 상황이 되지 못했다. 잠도 많이 줄였다. 그럼에도 개인 연습을 많이 못했고, 당연히 실력도 그리 빠르게 늘지 않았다. 실력 향상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춤을 더 열심히 춰야겠다거나 하는 열정이 크게 생기진 않았던 거 같다. 그래도 좋은 락킹 팀 팀장 덕분에 공연도 무사히 올리고 나름 춤에 대한 흥미가 붙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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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 년이 흘렀고, 개인 사정으로 휴학을 하게 됐다. 휴학을 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 취미 활동으로 춤을 춰볼까 생각했다. 찾아보니 집 앞 걸어서 오분 거리에 마침 춤 학원이 있었다. 동아리에서 락킹을 배웠으니 이번에는 힙합을 배워보기로 하고 전화 상담을 했다. 수강 신청 전에 시간 되면 한번 구경이나 오라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추리닝을 입고 학원을 방문했다. 마침 Breaking 수업 시작하는 시간이었는데, 온 김에 수업을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Breaking은 고려 조차 해보지 않았던 장르였지만 어쩌다가 한 타임 수업을 듣게 됐다. 강사분이 아주 체계적으로 잘 가르쳐주신다. 칭찬도 해주신다. 어 이거 꽤 재미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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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강사분이 할만하냐고 하며 말을 걸었다. 나는 힙합을 배우러 온 거라 아마 Breaking은 더 듣지 않을 거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강사분이, '저 전문 댄서예요.' 하며 당신 재능 있다고, 힙합 말고 Breaking 같이 하자고, 꼬드겼다. 나는 당연히 그분이 누군지 몰랐다. 뭐지 이상한 사람인가, 했다. 집에 돌아와 고민하다가, 강사분이 저 정도로 자신 있게 자기 수업 들으라는데 괜찮을 거 같다 싶어 힙합에서 Breaking으로 장르를 갈아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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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서 알게 된 건데, 그분은 우리나라 탑 클라스이자 한국 대표로 대회 출전 및 심사위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교수까지 하시는 비보이 마리오 (Mario)였다. 다른 사람은 듣고 싶어도 못 듣는 수업을, 나는 운동화 찍찍 끌고 간 동네 학원에서 학원가로 싸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분이 직접 나에게 수업 들으라고 설득했다. 알고보니 마리오 쌤은 10년째 그 학원에서 외부 강사로 일하고 계셨다. 유명해지고나서도 정과 책임감, 그 사이 어딘가로 낮은 페이에도 계셨던 거 같다. 여하튼 그렇게 나의 첫 비보잉 수업은 현역 탑 클라스 비보이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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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으로 임하는 것. 안돼도 끝까지 하려는 것. 잘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선생님이 첫 수업 때 나에게서 그걸 좋게 봐주신 거 같다. 휴학하는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너무나도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다음 학기가 개강하고도 수업을 계속 듣고 싶었던 나머지, 나는 금요일 공강을 만들고, 목요일 4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대전에서 수원까지 버스를 타고 집에 올라와 저녁 수업을 들으러 갔다. 이전까지는 바쁘다고, 두 달에 한번 집에 갈까 말까 하던 내가, 춤 수업을 가기 위해 그렇게 매주 집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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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여름방학에는 유학 준비를 하느라 학교에 남아 있었다(는 핑계로 매일 춤 연습을 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시간씩 연습했는데, 그러니까 자연스레 실력이 확 늘었고, 춤에 대한 욕심이 이때 처음으로 생긴 것 같다. 이때서야, 아, 왜 다른 동아리 친구들이 그렇게 열심히 개인 연습을 하는지 이해가 됐던 거 같다. 이때는 무려 졸업학년이었고, 졸업 전시도 준비 중이었으며, 유학 고민과 준비까지 했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매일 춤추고 운동했다. 춤추며 땀 흘리는 시간들. 처음에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동작을 매일 같이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성공하는 그런 성취감, 그때 나는 살아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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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락킹에서 비보잉으로 장르를 갈아탄 지 한 학기만에 OB 친구들과 무대를 서게 된다. 물론 이건 내 실력보다는 나이 버프, 팀장 친구 버프, 혼자 여자 버프 삼단 콤보 빠바박으로 일어난 결과물이었지만. 그렇게 애들이 넓은 아량으로 끼워줘서, 실력도 되지 않는 내가, 실력자 친구들과 한무대에 섰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학교 동아리 공연일 뿐이겠지만, 늦게 들어간 동아리에서 이런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뜻깊은 순간이었다. 이 모든 영광을 마리오 쌤에게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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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란 것을 추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에게 춤이라는 취미가 생겼다. 코로나 때문에 아쉽게도 춤 학원은 못 가지만, 그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창문을 거울삼아 나는 가끔 춤을 춘다. Steezy studio라는 온라인 레슨 회원권을 끊었다. (최근에는 바빠져서 잠시 쉬고 있다.) 바닥이 딱딱하고 집에 장애물이 많아 비보잉을 하기에는 위험하고, 대신에 힙합이나 하우스 영상을 보고 따라 한다. 힙합을 춰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3년 만에 드디어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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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기 전 우연히 유튜브에 뜬 미숙한 그때의 첫 공연 영상을 보고는 나의 춤 연대기를 쏟아내고야 말았다. 다시 생각해도 저 당시 춤 동아리에 들어가겠다고 한 선택은 참 용감했으며, 탁월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취미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다 주위 사람들 덕분이었던 거 같다. 항상 지지하고 응원해줬던 J, 용기를 줬던 그 당시 팀장들, 미숙해도 화 안 내고 이끌어줬던 H, 비보잉이라는 장르에 도전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항상 칭찬해주시던 마리오쌤, 그리고 부족한 나를 받아준 비보이팀 친구들. 역시, 무얼 하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