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11월의 책,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작가 (평론가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하지만 책 리뷰이므로 작가라고 칭하겠다)의 신작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작가의 팬도 안티팬도 아니지만, 방송과 글로 통해서 접한 그는 그리 호감적 인상을 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평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대부분의 글에서 평론을 위한 평론을 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감성과 이성의 경계를 다루는 일이라 그런가. 아니면 평론가로서 언론플레이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인가. 칭찬할 부분은 칭찬해주면 되는 걸 모든 작품을 '어떤 부분을 까야 좋을까'하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꽤 괜찮았던 작품에 준 형편없는 평점을 보면 눈살부터 찌푸려진다. 허지웅 작가 또한 그런 부류의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책을 든 이유는 그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암 투병 이후로 방송 복귀를 했을 때 나온 예능 프로를 잠시 본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주위 사람들이 자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었다. 냉철하고 예민한 허지웅 작가에게는 건강 악화로 힘들었던 경험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또 그를 변화시켰는지가 궁금했다. 

그가 집필한 책을 읽는 건 처음이라 책 전개나 문체로 비교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영화 평론가라서 그런지 여러 영화를 예로 드는데, 독자가 그 영화를 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행히 반 정도는 본 영화라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경험 하나로 스토리를 전개하며 한 챕터를 채우는 게, 아 이래서 작가구나, 능력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과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하고 길을 잃기도 했다. 에세이의 특징인가. 

'죽음'이라는 이벤트가 인간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바꾸는데 영향은 끼칠 수 있겠지만 사람 고유의 본성을 바꾸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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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정확히 바로 그 공포에 맞서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운명론적 공포를 극복하고, 반복되더라도 좋을 만큼 모든 순간에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관없다고, 이토록 끔찍한 삶이라도 내 것이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런 삶을 사랑하라 주문하는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바로 그 순간 네 삶의 고통과 즐거움 모두를 주인의 자세로 껴안고 긍정하라는 아모르파티와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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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65%)

오스카 와일드는 3년 후 죽었다. 죽기 전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이 뭔지 모를 때 글을 썼습니다. 이제는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쓸 게 없습니다. 삶은 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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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6%)

삶의 본질을 다루는 책이나 컨텐츠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 삶의 의미와 본질을 깨우친 후에는 "왜, 무엇을 하며 살아야는 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삶은 무의미하다. 그래도 영화 볼 때나 팟캐스트 들을 때 (요즘 역사 팟캐스트에 꽂혔다) 면 더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흥미롭고 재미있다. 머리 식힐 때나 운동할 때 그리고 쉴 때도 배경 음악 삼아 역사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듣고 있는데 요즘 다음 에피소드에는 무슨 얘기가 나올까 재미로 사는 것 같다. 기안 84가 나 혼자 산다에서 우주에서 보는 우리는 티끌 같은 존재라고, 우리는 세상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말고 하루하루 끌리는 대로 살아야 가장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 같다. 인생에는 기쁨과 슬픔 아픔 고통 등의 감정이 있기에 비로소 살아가는 이유가 생긴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실명으로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그냥 쓰지 않는다. 내용만큼이나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전처럼 드러내놓고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웃는다. 비굴하게 웃을 때도 있고 상냥하게 웃을 때도 있다. 나는 이제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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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1%)

가면이 필요없는 사람과 필요에 의해 가면을 쓰는 사람. 나는 가면을 쓰지 않고도 진심으로써 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세상에는 가면 없이 사는 사람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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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에 두면 대외적으로 쌓아온 업적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더 열심히 딴짓을 하며 살아야지.

 

@하루 한 편 글쓰기
2020년 11월 5일, 목요일